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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심도

지심도 기본현황

장승포항에서 20분 정도 도선을 타고 가야 하는 섬이다. 지심도는 거제도 본섬의 동쪽 끝 장승포항 앞바다 약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손꼽히는 동백군락지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섬의 모양이 마음 심(心)자를 닮았다 하여 지심도(只心島)라 불리고 있다. 장승포 항에서 하루 5차례(주말 9회) 왕복하는 도선을 타고 뱃길로 20분 남짓 가다보면 선착장에 도착하게 된다. 거제 부속 섬으로 10개의 유인도 중 하나다. 전체 면적은 338,609㎡(102,420평)로 임야가 약 67%이고 밭이 약 26%이며 가장 높은 곳이 97m, 섬의 둘레는 약 3.5km이다. 지심도의 자연 환경은 생태적으로 우수한 가치가 있으며, 남해안 특유의 상록활엽수림이 훼손되지 않은 원시림의 모습이 잘 보존 되어 있고 개가시나무를 비롯한 희귀식물과 멸종 위기조인 팔색조, 솔개, 흑비둘기 등이 서식하고 있다. 전체 숲 면적의 60~70%를 동백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이 동백숲은 굵기가 팔뚝만한 것부터 한 아름이 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의 동백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동백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동백나무가 많다. 지심도의 동백꽃은 12월 초부터 피기 시작하여 봄 기운이 무르익는 4월 하순경이면 대부분 꽃잎을 감춘다. 이처럼 다섯 달 가량 이어지는 개화기에는 어느 때라도 동백의 요염한 꽃빛을 감상할 수 있다. 바위로 형성된 지심도의 해안선은 낚시터로 소문나 있다. 감성돔, 볼락, 도다리 등이 잡힌다. 주로 12월~3월은 볼락과 학꽁치, 2월~4월은 숭어철이다. 4월~5월은 봄도다리가 제철이고 6월은 농어가 인기어종이다. 여름에는 자리돔, 6월~10월에 걸쳐서는 참돔, 뱅어돔, 전갱어가 잘 잡힌다. 현재는 15여 가구 대부분의 주민이 민박을 하며, 일부 섬의 비탈에 밭농사를 짓거나 수산업을 하며 살고 있다.

지심도 역사

지심도의 이름에 대한 문헌상의 유래 및 변천상황은 1469년 경상도속찬지리지에 지사도(知士島)란 이름이 보인다. 그 후 1861년 만들어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지삼도(只森島)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상록수들이 우거진 섬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이후 지삼도(只森島)와 지심도(只心島)가 섞여 표기되다가 1889년 면리제 개편으로 고현면을 일운면과 이운면으로 분리하는 등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지심도(只心島)로 바뀌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일본 본토는 물론 대마도와도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섬인데다 대마도와 한반도 사이의 대한해협을 지나는 바닷길의 길목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오래전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이용되어 왔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대포를 비롯한 병참기지로 사용하면서 1936년 일본 육군성이 섬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섬을 요새화했다. 광복 이후에도 지심도는 온전히 우리 땅이 아니었다. 1963년까지도 우리 정부는 3년마다 임차계약을 맺고 건물만 주민들에게 세를 줬을 뿐 서류상 땅은 일본 육군성 소유였다. 1971년에야 대한민국 국방부로 소유권이 이전되었고, 이후 우리나라 해군에서 관리를 해왔으나 본래 거제시의 관할이란 점을 내세워 2005년 5월 거제시민의 지심도 반환 운동이 시작되었다. 오랜기간 부침을 반복하던 반환 운동은 2010년 권민호 시장의 공약사업으로 추진되어 12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2017년 3월 9일 거제시로의 소유권 이전사업을 마무리하게 되는 소유권 반환 기념행사를 가졌다. 드디어 지심도가 거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지심도 모습

하루 5번(주말 9회)있는 도선을 타고 15분 정도 달리다 보면 섬의 남서쪽에 위치한 선착장에 닿는다. 이후 다소 가파른 언덕길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곳이 섬 안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 또 너무 작은 섬이다 보니 길도 좁고 차도 한 대 없다. 지그재그형의 길을 지나면 거미줄처럼 연결된 운치 있는 황톳길의 산책로를 만나게 되며, 가는 곳곳이 동백 터널로 연인의 길이라 할 만 하다. 동박새나 직박구리의 울음소리와 함께 상록수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빛나는 남해의 쪽빛 바다는 세상의 소음을 잊게 한다. 먼저 마끝 가는 길로 방향을 잡다보면 보이는 집마다 모두 민박집이고 적산 가옥들인데 나지막하고 수수한 생김이 지심도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랑 닮아 정답다. 발전소 아래 길로 접어들어 좁은 산길의 끝자락은 하늘에 닿아 있고 그 끝에 마끝이 있다. 마파람이 부는 끝자락이라 붙은 이름이다. 천혜의 아름다움을 가진 마끝은 매미 태풍 때 파도가 넘어와 말라 버린 소나무도 지리산 고사목같이 보일 만큼 매력적이고, 그 너머로 보이는 미조라와 서이말 등대는 한 폭의 그림과 같다. 발길을 돌려 몇몇 민박집을 지나 언덕에 올라서면 세 갈래 길이 나오는데, 오른쪽 길을 택해 내려가면 첫 번째 포진지가 보인다. 모두 5곳의 포진지와 1곳의 탄약고가 있다. 포진지는 모두 원형으로 동일한 형태인데 직경 18m의 방호벽을 만들고 그 안에 직경 4m의 포대를 만들었다. 방호벽의 높이는 1.5m 정도이고 남쪽과 북쪽에 계단을 만들었다. 포진지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현재도 잘 보존되어 있다. 1936년 4월 23일 일본 육군성은 당시 10여 가구를 강제 이주시키고 1936년 7월 10일 포대를 착공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중국 침략과 미 연합국과의 일전 등을 준비하기 위한 진해 해면 방비 부대 소속이었다. 45식 15밀리 캐논포 4문, 38식 기관총, 96식 측원기 등을 각각 배치했다. 포대에는 1개 중대 약100여명을 주둔시켰다. 탄약고는 1935년 11월 30일 ~ 1938년 1월 27일 사이 지심도 포대 건설 당시 세워 졌는데, 내부는 4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고, 탄약고 안에는 45식 15밀리 캐논포 탄환, 38식 기관총 탄환 등 각종 화약을 보관하고 있었다. 외부 좌우에 환기구 역할의 구멍 2곳과 내부에서 외부로 연결되는 항아리 모양의 수로도 설치되어 있으며, 특히 그 당시 설치했다는 전등 시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막중한 임무를 띤 곳으로 짐작된다. 입구의 정문은 부산 쪽, 후문이 쓰시마 쪽을 향하고 있는데, 탄약과 포탄을 저장 했다는 콘크리트 지하 벙커는 대낮인데도 스산한 느낌이 들어 당시의 불안했던 지심도를 느끼게 한다.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인 해발 97m 지점에 위치한 활주로는 비행장을 만들었다는 기록이나 증언은 없지만 과거 신문기사 중 일본군이 비행장을 만들다만 곳이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다시 발길을 내달려 이어지는 길은 탄성이 절로 나는 동백터널의 시작이다. 몇 십 년, 몇 백 년이 지나야 이런 아름드리 동백이 될까? 어른의 한 아름을 넘는 고목들이 이마를 맞대고 선 그 속에서 올려다 본 하늘도 내려다 본 바다도 모두 자연이 주는 선물인 듯하다. 지심도에는 일본군의 전등소와 소장사택이 함께 있다. 소장사택은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으로 잘 보존되어 있으며, 전등소는 지심도 포대 완공과 함께 1938년 1월 27일 준공됐다. 전등소는 발전소와 소장사택, 막사 등의 부속 건물로 구성 되어 있다. 전등소는 탐조등 등을 갖추고 있었는데, 지심도의 기지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고 멀리 항해하는 일본 군함에게 위치를 알려 주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가까운 거리에 서치라이트보관소와 방향지시석이 설치되어 있다. 당시 탐조등은 직경 2m 정도였으며 조명의 도달 거리는 7~9km 정도였다. 지심도의 자연식생은 상록활엽수림과 곰솔림의 두 군락 단위로 구분할 수 있다. 세 사람이 양팔을 벌려 맞잡아도 안을 수 없는 곰솔할배도 만날 수 있다. 주요 수종은 동백을 비롯해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생달나무, 가마귀쪽나무, 돈나무 등 난대성 상록활엽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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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 관광국 관광진흥과 관광정책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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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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