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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포대첩기념공원

공원의 조성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13일부터 1598년 11월 19일까지 약 7년간의 전쟁으로 1차 침입과 2차 침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592년 4월13일 임진년에 발발한 침입을 제1차 침입, 3년 간의 강화 교섭기를 거쳐 1597년 침입을 제2차 침입이라 하며, 이 둘을 합해서 우리는 임진왜란이라고 한다. 옥포대첩기념공원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께서 옥포 앞바다에서 치룬 첫 번째 해전으로 첫 승전보를 올렸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조성했다. 처음에는 이순신장군의 우국충정과 충무정신을 후세에 계승코자 1953년 아주동 당등산인 거북재에 기념탑을 건립하고 1963년 옥포정을 낙성해 해마다 기념행사를 거행하였으나 1973년 대우조선소가 들어서면서 당등산 부지가 조선소로 편입되었고 기념탑과 옥포정을 조선소 구역 내인 아주동 탑곡마을에 이전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의 첫 승첩지로서 역사적 위상에 비하여 그 규모가 협소하고 위치적으로 적합하지 않아 거제도민의 여망에 따라 현재의 부지에 1996년에 건립하였으며 총 면적은 109.022㎡이다. 매년 6월 16일 전후 약3일간 옥포대첩 기념 제전 행사를 하고 있으며 시설물로는 기념관, 효충사, 옥포루, 기념탑, 참배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참배단은 이순신장군의 영정을 '충'자로 형상화 하였고, 옥포루는 팔작누각형 한식건물로, 기념관에는 해전도 등 이순신장군과 관련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기념탑은 높이 30m로 학익진, 전선, 태산모양을 형상화하여 조선수군의 진취적 기상을 표현하였다.

임진왜란과 이순신장군의 업적

100년간의 전국시대 내란을 수습하고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륙진출을 위해 쓰시마 도주에게 조선 정벌을 준비하라고 명령을 내린 시기는 1587년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마도 도주 소 요시토시를 이용해 게이텐스 겐소를 사신으로 파견하여 "명을 정복하려고 하니 조선은 길을 내어 달라(가도입명)"라는 주장을 전달하였으나 조선은 명을 부모님의 나라로 섬기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길을 내어 줄 수가 없어서 거절을 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재차 대마도 도주를 이용하여 교섭을 청하고 뜻대로 되지 않자 조선을 침략할 뜻을 전달하였다. 본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이유는 지방군주(다이묘)들의 반란을 막고, 조선을 지나 명나라를 넘어 동남아까지 점령하는 대륙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조선 조정에서는 1590년 3월 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 종사관 허 성 등 통신사를 파견 일본의 정세를 알아오게 하였다. 1591년 3월 귀국한 통신사가 조정에 보고할 때 서인 이었던 황윤길은 "왜의 침입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했으나 동인이었던 김성일은 "왜의 침입이 없을 것"이라는 상반 된 보고를 함으로써 조정의 의견은 통일되지 못했고 전쟁에 대한 대비 또한 소홀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 1592년 4월 13일 일본을 출발한 왜군은 4월 14일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제1군이 부산포에 상륙하여 부산진성을 함락하고 4월 16일 동래성까지 함락하게 되었다. 4월 18일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제2군이 부산에 상륙, 구로다 나가마사가 이끄는 제3군이 다대포에 상륙해서 20만 대군의 왜군은 좌로, 중로, 우로 등 3개의 경로(조령, 추풍령, 죽령)로 나뉘어 조선의 도읍지인 한성으로 북상하게 되었다. 그러자 선조는 한성을 버리고, 개성을 향하여 피난길에 오르고, 20여일 만에 한성이 함락(5월 3일)되자 다시 평양으로 피난을 떠났다. 임금이 도성을 버리고 피난을 떠나자 백성들은 궁궐을 불태우고, 약탈을 일삼으니, 나라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한성이 함락되고, 함경도까지 왜군들의 침략을 당하고 있을 때 남해안 일대에서는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들이 왜군을 막아내고 있었다. 당시 이순신 장군은 1년 2개월 전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해 있었고, 원균은 경상 우수사로 부임한지 2개월째였다. 원균은 임진왜란 초기에 왜군의 기세에 눌려 전함을 버리고, 수군 1만 여명을 해산시킨 상태였다. 뒤늦게 해상의 중요성을 깨닫고, 율포 만호 이영남을 보내서 이순신 장군에게 원병 요청을 하였다. 이순신 장군은 조정의 출전명령을 받고, 여수에서 5월 4일 새벽에 , 판옥선 24척, 협선 15척, 포작선46척을 거느리고 경상도로 출발을 한다. 고성 소비포(고성 하일면)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통영 당포(산양면)에서 1박을 하였다. 판옥선 4척과 협선 2척을 거느리고 온 원균과 만나서 거제도 송미포(다대)에서 1박을 하고, 5월7일 송미포에서 출발하여 왜군이 머무르고 있는 천성, 가덕도로 향하던 중 오시(오전11시~오후1시경)경, 조선수군이 옥포 앞바다에 이르렀을 때, 이순신 장군이 타고 있던 전방의 척후선으로 부터 옥포만에서 30여척의 왜선들이 정박을 하고 분탕질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조선 수군들과 이순신 장군은 양지암을 돌아 지금의 대우조선소가 위치한 옥포 만에서 해전을 치루었다. 단 1명의 전사자도 없이 왜선 30여척 중 26척을 격침시키고, 첫 승전을 거둔 곳이 바로 옥포 해전이었다. 이어서 달아나는 왜군을 추격하여 영등포(거제 장목면)를 거쳐 옛 진해 합포에서 5척을 격침 시키고, 다음날 적진포(통영시 광도면)에서 11척을 각각 격침시켰다. 옥포 해전은 옥포와 합포, 그리고 적진포 3군데를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옥포 해전은 조선 수군의 첫 해전이자, 첫 승리이며, 임진왜란의 첫승리이기도 하였다. 옥포 해전의 첫 승리는 이후의 전황을 유리하게 전개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왜군들의 통신과 서해 곡창지대로부터의 보급로를 해상에서 차단함으로써 왜군들의 육상 상륙과 진격을 저지시켰다. 또한, 남해안 일대의 재해권을 장악 할 수 있는 기틀이 되었다.

주변 관광지

주변 관광지로는 김영삼 대통령 생가와 기록 전시관이 있고, 매년 1월이면 펭귄 수영축제가 열리는 덕포 해수욕장과, 4월이면 진달래가 만개해 비단처럼 아름다운 대금산이 자리하고 있다.
옥포 항에서 출발하여 대계마을까지 이어지는 8.3km의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은 조선수군의 첫 승전인 옥포해전에 출전한 명장들의 이야기가 바다와 함께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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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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