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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장평동

장평동은 서쪽으로는 사등면과 경계를 하고 동쪽으로는 고현동과 경계를 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계룡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서쪽으로는 양지산, 북은 갈우산, 동은 중뫼산, 그리고 푸른 고현만이 있어 천혜의 명당 배산임수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지형이다. 장평이란 말은 마을앞 바닷가에 길게 뻗어 있는 들판을 보고 긴들, 진들이라 하였는데 한문으로 고쳐서 장평(長坪)이라 하였다. 장평리는 본래 방이 없고 고종 32년(1895) 장평에 연곡리를 두었다가 1915년 7월 1일 도령 제20호에 의하여 연곡리, 장평리를 합하여 일운면 장평리로 공식 호칭하였다.

1942년 통영군 일운면에 속해 있을 때 와치와 연곡의 구제(區制)를 두어 와치를 장평1구라 하고 연곡을 장평2구라 하여 독립된 마을이었다. 1944년 통영군 일운면 고현출장소에 속했다가 1963년 1월 1일 고현출장소가 신현면이 되면서 신현면 장평리가 되었다. 1979년 읍으로 승격되자 신현읍 장평리가 되었고, 삼성조선소의 공단으로 인구가 급증하자 2005년 11월 15일 장평리에는 와치, 삼성, 장평1~9, 연곡으로 12개 행정 마을이 생겼으며, 2008년 7월 1일부로 장평동으로 분동되었고 현재 22통과 168반으로 구성되어있다.

와치마을

와치는 장평의 서북단 해안가에 위치한 마을로 뒷산 너머에 사등면 사곡리와 경계를 두고 있으며 사등면 사곡으로 넘어가는 낮은 고개를 누운티라 해 고개 마루에서 누어 쉬어간 곳으로 와치라 했다. 삼성조선소로 인해 와치 마을 대부분이 삼성조선소 부지에 편입되어 지금의 와치는 이주단지로 조성된 마을이다.

삼성마을

삼성마을은 1974년 장평 앞 죽도바다를 매립해 100만평을 조성하였고 죽도조선소를 기공하고 1977년 삼성조선소가 인수하면서 사원주택이 건설되자 이곳을 삼성마을이라 불렀다. 이 단지 내에는 삼성문화관과 운동장, 거제삼성호텔, 게스트하우스 등이 있다.

연곡마을

연곡은 삼성로에서 솔밭길을 경계로 하여 장평대로 진들길 아래 서북쪽에 있다. 장평과 서문 마을 중간에 있는 연곡 마을은 연곡소류지, 못골소류지와 연곡천, 못골촌이 흘러 농업용수로 활용하던 넓은 농경지가 있었으나 자갈땅으로 거치고, 가뭄의 피해를 많이 받아 수확량이 적어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편으로 죽세공을 하였던 농업 지역이었다. 동쪽 바다 건너에는 연초면 한내와 오비를 관망하고 동남쪽에는 서문 마을이 있다. 남서쪽에 거제의 주봉인 계룡산이 높이 솟아 그 지맥이 장평고개로 내려와서 와치 마을을 감싸고 있다.

장평마을

본래 진들이라 해 들판이 길다해 포로수용소때 장평비행장이 있던곳으로 대단위 아파트 마을이다.

가로지

연곡의 동북쪽 바닷가에 있는 갯마을로 가루지, 갈우, 서목, 조향 등으로 불리었으나 지금은 아파트 단지이다.

가매바윗거리

사기장골 서쪽에 있는 골갯 길이다.

김현령재

고현동 서문에서 계룡산 중허리의 장평동을 지나 거제면으로 가는 큰 길로 숙종14년(1688) 거제현령 김대기가 개서했다. 장평마을에서도 올라가는 길이 있다.

나안방

사기장골 북쪽 대섭 남쪽에 외딴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죽섬

나안방 북쪽에 대나무와 동백숲이 울창한 섬으로 대섬이라 불렀고 죽도조선소건설에 따라 매립되어 없어졌다.

사곡재

누운티 서쪽에서 사곡리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유자섬

죽도의 서북쪽에 있는 면적 2,975㎡의 작은 섬으로 옛날 중국에서 유자가 떠내려와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유자섬을 귤도라 하며 1970년에 일본의 유자연구가가 답사하고 큰 유자나무를 심어 달라고 했다.

피솔마을

누운티 서북쪽 바닷가 끝에 있는 개촌으로 붉은 적송이 울창해 붉은 피와 같다하여 피솔 또는 혈송이라 부르며 조선공단으로 이주했다.

담당부서

  • 장평동   

최종수정일 : 20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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