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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옥개라 하였는데 성종(成宗) 원년(元年)(1470) 거제칠진(巨濟七鎭)의 옥포진(玉浦鎭)을 두고 만호병정(萬戶兵政)을 하였으며 동19년(同19年)(1488) 해상의 방어를 위하여 옥포성(玉浦城)을 쌓아 옥포(玉浦)라 하였다.
옥개의 동편 본래 라호(羅湖)라 하였는데 선조(宣祖) 37年(1604) 구조라진(舊助羅鎭)을 옮겨왔다가 효종(孝宗) 2年(1651) 신묘(辛卯)에 다시 돌아 갔는데 조라관계(助羅官界)골이 있고 신조라(新助羅) 또는 조라포(助羅浦)라 하였다.
옥개의 복쪽산 밑에 옛날 개암나무가 있어 진목정(榛木亭)이라 하였는데 고종(高宗) 23年(1886) 병술(丙戌)에 천주학(天主學)이 들어와 거제도의 본당이 되었는데 동25년(同25年)(1888) 윤봉문(尹奉文) 요셉이 순교(殉敎)되자 박해가 심하여 국산(菊山)으로 바꾸었다 한다.
본래 파랑포(波浪浦)라 하였는데 이는 거제면(巨濟面)의 소랑포(小浪浦)와 풍수설(風水說)의 상대성 지명(地名)인데 팔랑포(八浪浦)라 하였음은 계절따라 풍행이 다르고 파도가 변함으로 팔랑(八浪)이라 하였는지 알길이 없다. 그러나 구전에는 임진왜란때 왜군 8명이 숨어 살았다 한다.
옥포 남서쪽 갓골에서 용싯골로 가는 도중의 골짜기다.
옥포 남서쪽에 일명 관곡이라는 골짜기다.
옥포 바닷가에 옥포지의 객사가 있었다.
국산에 1914년 천주교 진명호(陳明浩)회장이 강습소를 설립하였던 곳이다.
국산마을에 개암나무의 정자가 있었다.
옥포 동쪽 장등산 밑에 당산제를 지냈던 곳이다.
옥포 서쪽 대봉산 남서쪽에 대밭이 있었던 골짜기다.
옥포 서쪽 분깃등 남서쪽에 있는 큰 산이다.
옥포 북쪽에 있는 옛날의 집터였다.
옥포 동쪽 갯가에 있는 마을이다.
옥포 서북쪽 제석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옥포 서북쪽에서 연초면 야부로 넘어가는 고개에 옛날 치성을 드렸는데 그 자리를 뒤지면 소리가 난다는 전설이 있고, 뒤쥐가 서식하였다.
옥포 서쪽 벅수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대밭골 서쪽 작은 골에 있는 바위다.
옥포 서쪽에 있는 골짜기다.
옥포 서쪽산에 가뭄때 기우제를 지내던 봉우리다.
옥포 남쪽 골짜기의 바닷가에 뱀 머리 모양의 바위가 있다.
옥포 동쪽 바다에 돛배 모양의 바위가 있다.
옥포 서북쪽에 높고 편편하며 풀만있는 버덩이 있는 골짜기다.
옥포 서쪽 몰발골 북쪽에 벅수의 장승이 있다.
옥포 서쪽에 있는 등성이다.
진목정 북쪽 삼봉산에서 연초면 송정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옥포 서쪽에 있는 등성이다.
옥포 서북쪽에 옥포만호비가 있었던 밭으로 구획정리때 비석을 옥포초등학교 앞으로 옮기고 밭등성이는 없어졌다.
큰골 위의 산성터에 있는 바위다.
옥포 서북쪽 제석골 서쪽에 산신제를 지내던 바위다.
제석골 북쪽에 지형이 삼지창(三枝槍) 모양의 골짜기다.
옥포성의 서쪽문 밖에 있던 마을이다.
옥포성의 서쪽문 밖에 있던 마을이다.
성안못 남쪽에 큰 샘이 있었는데 충무정(忠武井)이라 불렀다.
진목정 동북쪽에 숯을 구웠던 골짜기다.
옥포 서북쪽에 시루 모양의 봉우리가 있다.
조라 안쪽에 있는 마을이다.
헌종(憲宗) 11년(1845)을사(乙巳) 6월 옥포성(玉浦城) 앞에 옥포만호(玉浦萬戶) 김창() 의 선행비와 마지막 만호 김형구의 영세불망비를 고종 25년(1888) 무자에 세웠는데 골목길에 있어 초라하여 1954년 5월 옥포경로회장 하규근이 옥포초등학교 뒷등 밭에 옮기고 임진왜란때 선무3등공신 옥포만호 이운용장군의 전공비를 새로 세웠는데 구획정리로 등성이가 없어지고 학교 앞으로 옮겨 문화유적으로 보존하고 있다.
선조 25년(1592) 일진왜란으로 국운이 위태로울때 5월 7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왜장 등당고호(藤堂高虎)가 인솔하던 왜선 26척을 격파한 옥포대첩의 구국의 성지 옥포만 승치봉 33,092평에 66억원을 투자하여 기념탑, 옥포루, 기념관, 참배단등 19건을 1990년에 기공하여 1996년 6월 22일 준공하고 제24회 옥포대첩기념제전을 거행하였다.
성종 원년(1470)거제칠진의 옥포진을 두고 동19년(1488) 진성으로 쌓았는데 둘레 1,125 m(,1980척) 높이 8.5m의 석성이고 임진왜란때 왜장 등당고호(藤堂高虎)에게 점령 당하여 5월 7일의 옥포대첩으로 성을 탈환하였고 1990년 12월 20일 지방기념물 제104호로 지정되었다.
옥포지의 수군함선을 자이선하기 위하여 내만을 축조하여 선박의 풍랑대피 또는 수리를 하였는데 지금은 매립지가 되었다.
세조 11년(1465) 경상우수영을 가배양에 처음 설치하였고 성종 원년(1470) 거제칠진의 옥포진을 두고 동19년(1488) 성을 쌓았으며 선조 25년(1592) 5월 7일 성을 점령당하였으나 옥포대첩으로 왜선 26척을 격파하였으며 당시 옥포만호 이성용은 의무 삼등공신이고 선조 38년(1605)9월 제7대 통제사로 제수 받아 충열사를 창건하였다.
대밭골 서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다.
옥포 남쪽에 있는 등성이에서 바다 건너 가덕도와 부산이 보이는 경치가 장관이다는 등성이다.
옥포 동쪽에 있는 긴 등성이 산이다.
옥포 서북쪽에 있는 마을위에 넓은 바위가 있는데 아이가 병들면 빌었다는 골짜기다.
큰골 서북쪽에 옛날 기와를 구웠다는 골짜기다.
선조(宣助) 37年(1604) 일운면 구조라진을 조라포(助羅浦)로 옮겼다가 효종(孝宗) 2年(1651) 신묘(辛卯)에 되돌아 갔는데 그때 조라진(助羅鎭)의 관아가 있던 곳이다.
진목정 동쪽에 있는 골짜기다.
옥포 서쪽 효자문 거리에 진성봉(陳聖奉)의 효자비가 있다.
삼두창 북쪽에 쪽박 모양의 바위가 있는 골짜기다.
대밭골 서쪽에 있는 큰 골짜기에 옛날 산성이 있었다.
파랑포에서 덕개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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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