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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리의 동쪽 당등산 자락에 옛날 아주현(鵝洲縣)의 장터가 있었는데 옥포조선소 구내에 편입되어 모두 옥수동(玉水洞)으로 이주하였다.
옥녀봉(玉女峯) 자락에 법률사지(法律寺址)가 있고 석씨유적고탑(釋氏遺蹟古塔) 높이 4.6m 일단(一段)의 폭 1.6m 연화강석(軟花崗石)으로된 옥개(屋蓋), 탕수(宕首), 노반(露盤)등 신라유물(新羅遺物)이 발굴되어 1935년 옮겨 세웠다가 옥포조선소 공원에 다시 옮겼으며 지방유형문화재(支防油型文化財) 자료(資料) 제33호(第33號)로 지정받은 탑이 있었으니 탑곡(塔谷)이라 하였다.
국사봉(國士峯) 아래 골짜기 따라 배골, 안골, 성안의 촌락이 합쳐 내곡(內谷)이라 하였으니 아주현성지(鵝洲縣城址)가 있다.
국사봉(國士峯)의 동남쪽 옥포만(玉浦灣)을 끼고 있어 상용소(上龍沼)와 하용소(下龍沼) 마을이 형성하고 있으며 옛날 웃용소의 연못에서 아래용소의 늪에 이르는 엉굴이 통하여 용이 드나들다 등천하였으니 용소(龍沼)라 하였다.
아래용싯골 서쪽에 있는 등성이에 고려장이 있었는데 일본인(日本人)이 도굴하여 몇기만 남아있다 한다.
배골 북쪽 골짜기에 너구리의 굴이 있었다.
내곡의 성안 뒤에 있는 논들이다.
성안 남서쪽에 높고 편평하여 나무는 없고 풀만 있는 번대기가 있다.
국사봉의 중허리에 거제반씨(巨濟潘氏) 시조(始祖) 반부(潘阜)의 묘소로 원종(元宗) 8年(1267) 원(元)나라의 한림학사(韓林學事)로 일본(日本)에 사신(使臣)으로 갔다와 동15년(同15年)(1274) 다시 나오면서 제국대장(齊國大長) 공주(公住)인 알리공주(謁里公住)를 모셔와 충열왕비(忠烈王妃)가 되었으니 문하시중(門下侍中) 기성부원군(岐城府院君)에 문절공(文節公)의 시호(諡號)를 받았다.
성안 남쪽 양지골의 밭들에 육도인 밭벼를 심었던 들이다.
국사봉 아래 골짜기에 배씨(裵氏)가 입주하여 배골이라 하였다.
배골 북쪽 늑골의 지석당 남쪽에 있는 골짜기에 보가 있다.
큰골 밑에 뱀 모양의 바위가 있다.
성안 남쪽에 삼밭이 있던 들이다.
안골 불쪽들에 큰 정자나무가 있었고 활을 쏘던 사정이 있었다.
탑골 서쪽 골짜기에 서당이 있었다.
탑골 동쪽에 아주현성이 있었으며 임진왜란때 왜군과 싸우던 곳이다.
안골 서남쪽에 약수터가 있었던 골짜기다.
탑골 서쪽에 있는 둠벙에 옛날 송씨가 빠져 죽었다.
배골 북서쪽에서 신현읍 수월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아주 동쪽 옥포만에 접하는 동메산에 옥포진을 지키는 전초산성으로 둘레 280m 높이 4.5m의 이단석성(二段石城)으로 신라상군때 축성하였고, 1957年 6月 12日 옥포대승첩기념탑과 1963年 6月 27日 옥포정을 건립하였는데 옥포조선소 건설에 따라 당등산이 없어지고 1975年 5月 7日 탑곡리 국도변으로 옮겼다.
성내마을에 신라 경덕왕 16년(757) 아주현성으로 축성하였으며 기단석(基壇石)과 기와장이 노출되어 1996年 동아대학교(東亞大學校)에서 발굴하여 고적을 탐구하고 있다. 또한 원종(元宗) 12年(1271) 왜구의 침범으로 피난갈때 아주현감(鵝主縣監)이었던 아주신씨(鵝洲申氏)의 묘(墓)가 거창군(居昌郡) 남하면(南下面) 양하리(梁下里)에 신장군묘(申將軍墓)로 있다 한다.
아주와 아양의 경계고개에 3일과 8일의 오일장터가 있었는데 한일합방후 우시장(牛市場)만 남았다가 조선소 건설 구역에 편입되었다.
옥녀봉과 국사봉에서 흐르는 하천으로 아주평야의 수원이었는데 조선소 건설로 직강공사를 한 길이 4㎞의 준용하천이다.
당등산 56,000평 봉우리에 있는 산성에 1957年 6月 12日 옥포대? 5月 7日 탑골마을 앞 조선소 구내 2,704평에 옮기고 1995년 제33회 옥포대첩기념제전을 올렸는데 1996年 6月 22日 옥포대첩기념공원(玉浦大捷紀念公園)이 준공하였으나, 옛탑과 정자는 보존관리하고 있다.
1973年 10月 11日 옥포만(玉浦灣)의 육지 70만평과 바다 매립지 30만평의 100만평 옥포조선소를 기공하여 1978年 9月 26日 대우조선소(大宇造船所)가 인수하고 1981年 10月 17日 준공식을 가졌으며, 연산 400만톤을 건조할수 있고 세계 최대의 1,000m도크와 900M/T의 크레인이 있으며 1995년에는 잠수함, 1996년에는 구축함을 건조하였다.
안골에서 신현읍 양정으로 넘어가는 멀고 높이 349.9m에 삼각점(三角点)이 있는 험준한 고개로 옛날 두남매가 중허리에서 소나기를 만나 비에 젖은 누나의 몸매를 보고 흥분하자 무례한 짓이라하여 돌로 성기를 찍어 죽었으니 누나의 슬픈 울음에 울음이재라 한다.
울음이재 동쪽에 무지개가 자주 선다는 골짜기다.
안골 서쪽에 있는 들판을 장가청 또는 장바청이라 한다.
안골 서남쪽 성지골에 중의 머리 같은 바위다.
배골 북쪽 늑골 남쪽에 산신을 모시는 신당이 있었다.
탑골 동쪽에 있는 긴 등성이다.
탑골 서남쪽에서 일운면 소동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울음이재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고현의 거제고을 호장(戶長)이 아양의 이순신장군 사당에 제사를 지내고 돌아가다 큰 비를 만나 죽었는데 그 뒤 호장골에서 그 호장(戶長)의 제사를 지냈다 한다.
양지골에 작은 바위 위에 큰 바위가 얹혀있어 흔들거리는 것 같은 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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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