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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둔덕기성(巨濟 屯德岐城)(구:폐왕성)(사적 제509호) 아래 비학산(飛鶴山) 밑이라하여 영등(永登)을 학산(鶴山)이라 하였으나 영등진(永登鎭)터 이므로 본래의 영등(永登)으로 환원되기를 원하고 있다.
학산의 북쪽에 영등진의 관청이 있던 곳이며 지석묘(支石墓)가 산재하는 역사 깊은 마을이다.
아사의 동북쪽 골짜기 따라 촌락을 형성하고 있다.
아사 골마을 뒷산 높이 86.8m에 삼각점(三角点)이 있다.
아사의 북쪽 사등면의 왜성과 접하는 논들이 있다.
영등진의 방위군이 군복이나 밥그릇 등을 세탁하던 개울에서 오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니 이 꾸정물 때문에 갯벌에서 조개나 고동을 채집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현재는 세양수산의 어장막이 있다.
학산마을 위에 있는 우물로 을유년 가뭄때 물이 나오지 않아 길가던 도사(道士)가 지팡이로 두드리니 물이 솟아났다하여 도사천(道士泉)이라 하며 온 동민의 식수정이었다.
아사의 남쪽에 영등진의 동헌이 있던 곳이나 지금은 논이다.
학산마을에 옛날 산신당이 있었다.
아사의 동남쪽에 학이 날아가는 형국의 산이 있으므로 영등포(永登浦)를 학산(鶴山)이라 개칭하였다한다.
영등포영이 있을때에 활을 쏘던 사부정이 있었다.
도사천 윗쪽에 있는 등성이로 깊은 골짜기를 새미골이라 한다.
비학산에 우뚝선 선바위가 있고 그 동쪽에 송곳 모양의 뾰족한 바위가 있다.
성종원년(成宗元年:1470) 거제칠진(巨濟七鎭)의 하나로 장목면(長木面) 구영(舊永)에 진을 두었다가 인조원년(仁祖元年:1623)에 이곳 영등포(永登浦)로 옮겼으며 수군 만호(萬戶)의 병정으로 군관(軍官), 진무(鎭撫), 지인(知印)을 두고 병선(兵船)과 사후선(伺候船)인 작은 군선에 수군을 주둔시켰는데 영조(英祖) 26年(1750)에 소비포(所非浦) 현 장목포(長木浦)로 옮겼다가 同 32年(1895) 갑오경장(甲午更張) 다음해에 통제영(統制營)과 함께 폐지되고 학산리(鶴山里)라 하였다.
불근등 밑에 용둠벙골이 있고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연못이 있다.
아사 동남쪽 앞에 있는 들판에 영등진이 있을때에 엽전을 만들던 점포가 있었다.
영등 위쪽에 있었던 샘으로 지금은 둠범속에 들어갔다.
영등 남서쪽에 영등포진이 있을때 포수청이 있었다.
아사 동쪽에 있는 들에 함정을 팠었다 한다.
영등 앞바다의 한려수도에 돌섬 암초가 있는데 썰물이면 보이고 민물때에 지나가는 선박들이 좌초되므로 마을 젊은이들이 교대로 횃불을 비추고 지나가는 배들을 무사하게 안내하였다는 갸륵한 전설의 암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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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