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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둔덕의 서쪽을 새몰 둔덕천(屯德川)동쪽에 점들이라 하며 두촌락을 합쳐서 상서(上西)마을이라 한다.
기성현(岐城縣)때 국마(國馬)를 사양하던 마장(馬場)마을의 위에 넓은 초원을 형성하여 목장을 지켰다는 시목(枾木)이었으나 원종 12년(元宗12年 : 1271) 왜구의 침범으로 거제도민은 모두 거창(居昌)으로 피난가니 현도 없어지고 그 뒤 감나무를 식재하여 시목(枾木)이라 하였다고 전래한다.
시목의 앞산에 경사가 급하고 돌덩어리산인 너설이 덩걸이라하며 옛날 개를 묶고 잡으려다 놓쳐서 돌덩이 사이로 숨어 들어가자 온 종일 법석을 부렸다 한다.
시목 서북쪽에 있는 큰 바위의 주위에 달래가 자생하였으니 달룡개 바위라 불렀다.
유지나무골에서 상서의 북쪽을 올라 지석(支石)으로 가는 십리재로 상서의 등성이에 오르면 오량곡(烏良谷)이 깊숙히 들어와 이곳을 가로가는 길은 하늘만 바라보는 울창한 숲속으로 으시으시 겁이나고 도적들이 출몰하여 금품을 탈취하니 이 재를 도적골재라하고 여러사람이 함께 다니던 길이다.
시목의 북서쪽의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앗간이 있던 곳이다.
유지마을 네거리에서 서쪽의 통영으로 사는 대로이며 상서의 새몰을 지나 등성이에서 오양성(烏壤城)으로 내리가는 직선길이기 때문이고 오늘에는 육지의 송전탑만 등성이 마다 높이 서있고 일명 큰재로 높이 302.7m에 삼각점(三角点)이 있다.
상서의 동남쪽 둔덕천(屯德川)의 구비건너에 있는 들판의 세거리 길가에 풍구인 풀무의 대장간을 차려놓고 온갖 농기구를 만들어 파는 점포가 있었고, 길손들이 쉬어가는 주막도 있었다.
신촌마을 남쪽에 수질 좋은 냉천샘이 있다.
885년의 큰가뭄으로 을유년 흉년때 팥죽 한 그릇과 바꾸어 먹었다는 논이 시목마을 동쪽에 있다.
시목과 마장의 경계를 목꼴이라 하며 연중 맑은 물이 흘러 기성현(岐城縣)때 현령이 별장을 짓고 목욕을 하였다는 곳으로 오늘에는 포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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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