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망골 또는 망티라 하였는데 이는 현종(顯宗) 5年(1664) 갑진(甲辰)에 거제현(巨濟縣)을 고현(古縣)에서 옛 명진현(溟珍縣)의 서쪽 3리(里)에 옮긴후 고자산재(姑子山峙)가 너무 가팔라서 숙종(肅宗) 14年(1688) 계룡산 중허리에 큰 길을 내다가 과도한 역사를 책하여 안렴사(按廉使)에 의하여 파직되자 뒷산 고개에서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을 달랬다는 현령 김대기(縣令 金大器)를 상징하여 망치(望峙)마을이라 하였다.
망치의 남쪽 바닷가에 본래 수양버들 밑 정자(亭子)가 있어 양화정(楊花亭) 또는 양화징이라 하였으며 해마다 별신굿을 하던 곳으로 [망치도 굿하고 양화정이도 굿한다]는 구전이 있는 아름다운 곳이라 楊花라 하였다.
본래 양지몰 또는 신촌, 새모실이라 하였는데 망치의 동편 높은 곳으로 멀리 태평양의 큰 바다를 바라보니 망양(望洋)이라 하였다.
망치 남쪽 새바위 밑 북쪽에 가로 질러 있는 등성이다.
양화 앞바다에 검은 빛깔의 암초이다.
가망여 북쪽에 있는 암초이다.
망치 북쪽 골짜기에 과부가 살았던 집이 있었다.
윤돌섬 건너 동쪽에 있는 골짜기다.
양지몰 앞 구렁에 있는 들이다.
양지몰 뒤쪽 새밋골 위쪽에 구부러진 바위가 있다.
망치 남쪽 해바위 맞은 편에 있는 바위다.
숙종(肅宗) 14年(1688) 거제현령(巨濟縣令) 김대기(金大器)가 계룡산 중허리에 김현령재(金縣令峙)의 큰 길을 내다가 안렴사(按廉使)에 의하여 과도역사를 시켰다는 이유로 파직당하여 망치마을에 살았으며 의성김씨(義城金氏)의 입거제 선조를 모시는 사당으로 양지마을에 창건하였다.
양화 서남쪽에서 동부면 수산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망치 서북쪽에서 동부면 구천리로 넘어가는 높고 가파른 고개에 임진왜란때 망을 보던 곳이고 숙종 14년(1688) 김현령재(金縣令峙)에 새길을 내다가 파직된 현령 김대기(金大器)가 이 재에 올라 큰 바다를 바라보던 고개라 전한다.
양화 서쪽 평지골 북쪽 매모양의 바위가 있다.
양화 서쪽 바위골에서 동부면 구천리 잔디밭골로 넘어가는 긴 고개다.
양지몰 동쪽 주전골 북쪽 골짜기에 맷돌모양의 바위가 있다.
망치 동남쪽 돌이 많은 곳에 있는 바위다.
양지몰 북쪽 모퉁이의 된바람이 강한 곳이다.
망치 남쪽 큰골 어귀에 있는 논으로 위에 큰들 등성이가 있다.
윤돌섬 동북쪽 길가에 불당이 있었던 마을이다.
망치 북쪽에서 신현읍 삼거리로 넘어가는 가파른 고개이다.
망치 동북쪽에 윗보가 있는 밑에 상보들이 있다.
양지몰 뒤쪽 판삿등 동쪽에 샘이 있는 골짜기다.
윤돌섬 서쪽에 작은 여가 있다.
양화 동쪽에 있는 개 끝이다.
망치 북쪽 삼거리재 위쪽에 오소리가 서식하는 등성이다.
망치 동쪽에 있는 바위다.
망치 동남쪽 육지와 300m 거리에 있는 섬으로 면적 11,027㎡이며 옛날 윤(尹)도령이 홀어머니와 살았는데 썰물때 어머니가 달밤에 거제도로 걸어나가 호부(呼父)아비와 만나 놀다가 새벽에 돌아 오는데 민물때에는 섬의 목이 깊어서 물에 빠지고 고생이 많은 것을 알고서 보다 못한 효심(孝心)으로 돌다리를 놓아 주었다하여 윤(尹)도령섬 또는 효자섬이라 한다.
망치 남쪽에 제피나무인 종피나무가 많은 골짜기다.
망치 동남쪽 머들 남쪽 초너리 끝에 적삼모양의 개이다.
양지몰 동쪽에 있는 골짜기다.
망치 남쪽 첫번째 개이다.
망치 동남쪽 첫널이 끝 첫나루 또는 초진포(初津浦)의 땅끝이다.
망치 남쪽 달뜬바위 밑에 있는 큰 골짜기다.
양지몰 뒤쪽에 있는 등성이를 일명 반사등이라 한다.
윤돌 동쪽에 서낭당이 있던 모둥이다.
망치 남쪽 재피드미 북쪽 골짜기에 달뜬바위와 마주보고 있다.
양화 동쪽에 옛날 술에 취하여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을 호랑이가 업고서 집으로 갔다는 흐뭇한 등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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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