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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先史時代)의 고인돌 무덤이 지석방(支石坊)의 서남쪽에 세개가 있었기 때문에 지석(支石)이라 하였으며 1913년 처음으로 사등면사무소를 사등리(沙等里)에 두었는데 1919년 지석(支石)마을에 옮겼다가 1936년 성포리(城浦里)로 옮겼다.
지석(支石)마을 남동쪽 골짜기에 윗장자골과 아래 장자골의 두 촌락이 있는데 가파르고 좁고 깊숙하여 옛날 장자라는 사람이 은거하여 살았다는 전설이 있으며 또한 임진왜란때 장군이었던 수성빈씨(壽城賓氏)가 입주하여 살고 있는 마을이라 장좌(將佐)라 하였다고 하며 그의 묘는 둔덕면 거림리 막하터 뒷산에 빈정승묘(賓政丞墓)라는 큰 묘가 있다.
장좌골에서 언양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옛날에 큰 길이었는데 그 산지를 개간하여 산골마을이 형성되었다.
지석 서쪽 바닷가에 있는 갯가의 들이다.
장자골에서 남동쪽 개간지로 가는 고개로 굴속처럼 좁고 깊숙한 골짜기다.
지석에 1913년 사등면사무소를 두었던 청사로 1936年 성포리로 옮기고 1940년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사당(祠堂)으로 개수하여 1942년 증 자헌대부 병조판서 김극조(贈 資憲大夫 兵曹判書 金克조)를 모시고 있다.
지석 남쪽에 개구리 모양의 바위가 있다.
지석 남쪽에 볏섬모양의 바위가 있다.
지석 남쪽에서 오량 골짜기의 중허리를 지나 둔덕면 시목리로 넘어가는 멀고 높은 산길의 험한 고개로 옛날 지나가는 장꾼을 상대로 산적이 나타났다는 고개이다.
지석 서쪽들 가운데에 작은 산이 있다.
장자골 뒤에 있는 골짜기다.
장자골 동북쪽 성포리와 경계의 높은 산으로 밑에 삼각점이 있으며 임진왜란때 망을 보았으니 일명 망산(望山)이라 한다.
지석 남쪽 홈택골 위에 있는 들이다.
매밑들에 버선 모양의 논배미가 있다.
장자골 동쪽에 벼락을 맞았다는 바위다.
지석 남쪽 애용구배미 밑에 베짜는 바디모양의 논 배미다.
도적골재 남쪽에 부엉이가 살던 바위가 있다.
지석과 청곡사이에 붉은 황토의 등성이다.
지석앞 바닷가에 뻘이 많은 개이다.
지석 서남쪽에 일명 선황당들이라고 하는 들이다.
지석남쪽 도적골재 밑에 소나무가 울창한 골짜기다.
지석 남쪽 홈택골에 고양이 모양의 논배미다.
지석 남쪽 언덕에 있는 골짜기다.
장자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다.
장자골 뒤에 용의 발 형태의 등성이다.
장자골 동남쪽 정자나무 너머에 있는 들이다.
지석 서남쪽 지석천에 1917년에 신작로와 함께 건설한 다리인데 지금은 4차선(車線) 국도 14호선의 확장으로 새 교량이 완공되었다.
장자골에 을유년 흉년때 찰떡을 얻어먹고 이 논을 주었다.
장자골 남동쪽에서 언양으로 가는 깊고 큰 골짜기다.
지석 북쪽 탱주뱅이 산에 탱자 모양의 바위가 있다.
지석 남쪽 지석천을 건너 물을 대어주던 홈통이 걸쳐있는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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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