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임진왜란때 오아포(烏兒浦)라 하였으나 그뒤에 가부랑 또는 가배(加背)라 하였는데 거제영봉 노자산(老子山)이 뒤를 막아주고 가배만의 양쪽 북의 함박금과 남의 대홀개의 땅끝이 길게 뻗어 까마귀가 날아 가는 형상으로 오아포(烏兒浦)라 하였고 뒤의 동망산(東望山)이 등뒤를 감싸주어 가배(加背)라 하였다.
가배의 서쪽 함미기에서 쪽박금, 함박금에 이르는 기다란 땅끝의 안개가 함지박의 형상이라 함박금(含朴金)마을이라 하였다.
뒷산 동망산(東望山)이 높고 가배만(加背灣)의 물결이 잔잔하여 부자(富者)마을이라 가부랑(加富梁)개라 부른다.
세종(世宗) 2年(1420) 경상좌도(慶尙左道) 안무사(按撫使)가 오아포(烏兒浦)에 처음으로 만호진(萬戶鎭)을 두었고 세조(世祖) 11年(1465) 경상우수영(慶尙右水營)을 두고 축성하였으며 둘레 1,487㎡(2,620尺) 높이 7.4㎡(13尺)이고 성안 43,373㎡의 석성(石城)으로 1991年 12月 18日 지방기념물(地方紀念物) 第110號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본래 가부랑개라 하며 임진왜란때 선조(宣祖) 26年(1593) 8月 이순신(李舜臣)이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로 임명되어 처음으로 통제영(統制營)을 두었는데 해전의 유동으로 한산도(閑山島), 고하도('목포(木浦)':高下島), 고금도('완도(莞島)':古今島), 춘원포(통영('통영(統營):春元浦)등으로 옮겼다가 동(同) 30年(1597) 3月 원균(元均)이 통제사(統制使)가 되어 다시 오아포(烏兒浦)로 왔는데 그해 8月 이순신(李舜臣)이 재임되어 한산도(閑山島)로 옮겼다.
세조(世祖) 11年(1465) 경상우수영(慶尙右水營)을 두었고 성종원년(成宗元年:1470) 거제칠진(巨濟七鎭)의 하나로 무종사품(武從四品)의 만호진(萬戶鎭)에 전선(戰船), 병선(兵船), 사후선(伺候船 2척(隻)과 요망(瞭望)을 두었다.
가배성 너머 동쪽에 있는 골짜기다.
가배 남쪽 건너에 있는 들판이다.
함박금 북쪽 쪽박금 앞바다에 있는 섬으로 면적 47,306㎡이다.
가배 남쪽 갯가에 구멍이 뚫린 바위가 있다.
가배 서쪽 등남개 북쪽에 농 모양의 바위다.
가배 남쪽 더근이 서남쪽끝 율포만에 접하는 갯마을이다.
가배성의 남동쪽 낮은 고개 너머 율포만에 접하는 갯마을이다.
가배성 동쪽에 있는 동문들이다.
함박금 북쪽 활미가 마을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활미기 동쪽에 있는 갯벌이다.
가배 남쪽 대홀개 남쪽 골짜기의 외딴 촌락이다.
활미기갯마을 서남쪽에 머귀나무가 많은 골짜기이다.
활미기 마을 남쪽에 복숭아 나무가 있는 골짜기이다.
가배만 남쪽에 불묵개마을과 불묵개들이 있다.
가배남쪽 율포만에 접하는 대홀개 남쪽에 붉은 바위가 있다.
가배만 남쪽에 있는 등성이다.
가배 서쪽에 있는 들이다.
가배성 너머 더근이에 있는 골짜기다.
가배성 서쪽 성밖에 있는 골짜기다.
가배성 너머 더근이 남쪽 율포만 바닷가에 외따로 있는 바위다.
가배에서 오송리 영월로 넘어가는 지름길 고개이다.
환미기에서 함박구미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가배 남쪽 불묵개 선창 동쪽에 있는 골짜기다.
가배성 너머 더근이 동쪽에 있는 높이 288.2㎡의 삼각점(三角点)이 있는 산이다.
가배 서쪽 환미기 서남쪽에 쪽박구미가 있고 그 남쪽 땅끝에 함박구미 갯마을이 있다.
가배 서쪽 목의 거제만에 접하는 갯마을이다.
담당부서
최종수정일 : 202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