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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사리의 윗 마을로 본래 연새, 상리 또는 연사라 하였으며 사질토의 논들이 많은 농촌으로 집집마다 아침 저녁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잘사는 마을이라 연사(烟沙)라 하였다.
연사와 연행의 중간에 위치하여 연중(烟中)마을이라 하였다.
연사의 국도변에 위치한 마을로 은행나무가 있으니 연행(烟杏)마을이라 하였다.
연초천 건너에 있으며 본래 효자문이라 하였는데 이는 옛날 이돌대(李乭大)라는 젊은이가 어머니의 고질병을 고치기 위하여 겨울철에 구하기 어려운 숭어를 하늘이 도와 구하여 어머니를 살렸으니 임금이 장사랑(將仕郞)의 벼슬을 내리니 마을에 배를 세우고 효촌(孝村)이라 하였다.
연초천 건너 남쪽에 본래 깨발골이라 하였는데 이는 마을 뒤가 모두 가파른 밭만 있었으니 깨를 재배하던 곳으로 임전(荏田)이라 하였고 1930년 앞바다를 간척하여 부동이 되었다.
연중을 큰몰이라 하고 동쪽의 들이 기름져 감자 같다하며 감자들 보도 있다.
임전 앞 바다 갯벌에 뚝을 쌓고 간척하여 1930년 전중농장(田中農場)을 이룩한 간척들이다.
큰 마을 연중 동쪽에서 죽토리 관암으로 돌아가는 모퉁이다.
웃마을 서쪽 좆바위 위쪽에 농 모양의 바위가 있다.
효촌 앞에 있는 둠벙에 독사가 살았다.
임전 앞에 있는 바위에서 돈치를 하고 놀았다.
연중에는 밀양손씨(密陽孫氏)의 손계선(孫繼先)을 모시는 사당이다.
연사 서남쪽 배나무골 남쪽 바닷가에 대발을 치고 고기를 잡았다.
연사 서남쪽에 돌배나무가 있던 골짜기다.
여사 동북쪽 큰골에 볏가리 모양의 바위가 있다.
옷몰 동북쪽에 있는작은 보 이다.
아랫몰 남쪽 계곡에 새로 개간한 밭이 있었다.
아랫몰 서쪽 골짜기에 서당이 있었다.
오비재 밑, 높이 256m 봉우리에 삼각점(三角点)이 있다.
깨밭골 동쪽에 약수터가 있는 골짜기다.
임전 북쪽 1917년 에 가설한 연사교에 1950년 11월 27일 UN군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설치하고 1952년 5월 7일 '돗드'소장이 포로에게 납치되자 수용소지역내의 주민 1,116세대를 소개시키고 출입을 통제하던 검문소가 있었다.
연사리와 죽토리에 펼쳐있는 거제 5대평야의 하나로 연사령이라고도 한다.
연사 북쪽에서 오비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 대로였다.
웃마을 서쪽 좆바위 밑에 오소리 굴이 있는 바위다.
웃마을 동북쪽 새끼보 위에 있는 보 이다.
연행(烟杏)마을에 둘레 10m의 은행나무 가지로 절구통을 만들었다.
효촌 남쪽에 어머니를 낫게 한 효자(孝者) 장사랑(將仕朗) 이돌대(李乭大)의 정문비각이 있었다.
연중 감자들 밑에 장구모양의 논이 있다.
깨밭골 뒷쪽에 옛날 절이 있었다는 골짜기다.
2차대전(二次大戰)때 저사한 옥찬석(玉贊錫)과 그의 외아들이 사고로 사망하자 뒤따라 죽기를 결심한 윤씨(윤씨)는 죽음보다 시부모를 모시는 것이 도리로 효도를 다하니 효촌마을에서 정열비를 세우고 향교에서 표창을 하였다.
효촌 앞에 조씨가 살면서 농사를 지었다는 논이다.
웃몰 서쪽에 남성의 성기모양의 바위가 있다.
연중 앞 감자들 동쪽 복판에 중보가 있다.
효촌에서 신현읍 수양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웃몰의 영산신씨(零山辛氏)의 사당으로 신정보(辛鼎保)와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工臣) 신응수(身應壽), 신덕룡(辛德龍)을 모시고 있다.
웃몰 서북쪽에 있는 큰 골짜기다.
웃몰 서쪽 농바위 위에 탕건모양의 바위다.
연사리 복판에 있는 큰들의 보 이다.
효촌 앞 들에 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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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