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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산(山芳山)의 남쪽밑에 큰 마을을 덕촌(德村)이라 하였고 평지에 중리(中里)가 있으며 동쪽 낮은 산밑에 양지(陽地)마을이있다. 내간덕(內看德)은 읍기(邑基)에서 바라보니 안쪽에 있는 큰 마을이고 밖에 있는 동쪽의 큰마을을 외간덕(外看德)이라 하였다.
내간리(內看里)의 산방산(山芳山) 밑 본 마을로 큰 마을을 덕촌(德村)이라 하였으나 중리(中里)로 내려와 윗마을이라 한다.
내간 들판에 있는 중심되는 마을이다.
중리(中里)마을의 동쪽 외간덕(外看德)과 경계하는 낮은 산의 양지(陽地) 바른곳에 있는 옛날 양지몰이라 하였다.
내간덕(內看德)의 서쪽에 위치하고 옛날부터 유생(儒生)이 많아 생곡(生谷)또는 성인(聖人)골이라 하였고, 농사(農事)골이라 세경골이라 하였으나 고종(高宗) 26年(1889) 명곡(明谷)으로 부르다가 송림(松林)이 울창하여 1942年 5月 1日 송곡(松谷)이라 하였다.
생골의 남쪽 바닷가에 잇는 개촌으로 가지가 무성한 잡나무가 많아 가목(柯木)마을이라 하기도 하였다.
양지(陽地)마을 앞 바다에 있는 작은 돌섬이다.
가나마을 살록강 들판 남쪽 낮은 곳에 있는 들이다.
양지몰 앞 구렁에 있는 논들이다.
양지몰 서쪽에 있는 산 꼭대기에 박쥐굴이 있다.
중리의 들판 낮은 곳에 있는 굼턱논에 물을 대는 보가 있다.
내간덕(內看德)의 서쪽 산방산(山芳山) 밑 골짜기에 있는 절이다.
생골에서 둔덕면 대밭골로 넘어가는 큰 고갯길로 옛날에는 중요한 대로 역할을 하였으나 너무 가파라 52개의 구비를 쳤지만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너무나 답답한 나머지 일명 신두구비재라 하였다.
양지몰 위쪽에 있는 다락논으로 옛날 고종(高宗) 22年 을유년(乙酉年) 흉년(凶年)때 떡 한쪽과 바꾸어 먹고 흉년을 살았다는 것으로 그 옆에 부끼미 배미도 있다.
양지몰 서쪽에 탕건 모양의 바위 옆에 넓은 마당바위가 있다.
양지몰 뒤쪽에 있는 산골짝에 묘소가 많아 만산골이라 한다.
생골 북쪽의골짜기에 돌 미륵이 발견되어 내원사(內院寺)에 옮겼다.
내간덕(內看德)의 북쪽 산방산(山芳山) 골짜기에 작은 샘과 큰 샘이 있다.
중리(中里)마을에서답답골재로 가기 위한 생골고개이다.
내원사(內院寺) 동쪽에 묘가 있는데 옛날 정승 유씨(柳氏)의 딸이 열살때 집안이 변을 당하여 어머니는 남해(南海)로 가고 거제(巨濟)의 어느집에 부치어 살다 자라서 시집도 못가고 죽으니 마을 사람들이 장사하였는데 그뒤 철종(哲宗) 13年(1862) 하겸락(河兼洛)이 묘비를 세웠다 한다.
내원사(內院寺) 서북쪽에서 둔덕면(屯德面) 산방리(山芳里)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달리는 말같은 등성이가 있고 그 밑에 옛날의 절터가 있다.
중리 앞에 있는 일곱개의 바위를 칠성바위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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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