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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실밭개라 하여 사외포(絲外浦)라 하였는데 실밭이 사전(絲田), 실전(實田)으로 바뀌어졌다 하며 밭들이 많아 면화(綿花)와 대마(大麻)를 재배하였다는 곳으로 임진왜란(壬辰倭亂)의 선무원종이등공신 여막동(宣武原從二等功臣 余莫同)이 마을을 이룩하였다는 구전(口傳)이 있다.
하청의 북쪽 용등산(龍登山) 밑에 위치하여 본래 뱀곶이 사곶(巳串) 또는 뱀고지라 하였는데 임진왜란을 끝내고 선무원종이등공신 김옥춘(宣武原從二等功臣 金玉春)이 을사년(乙巳年:1605)에 돌아 왔으니 사환(巳還)으로 하였다.
본래 왜곶이 또는 사환(巳還)의 서쪽 바닷가로 외환(外還)이라 하였는데 신라(新羅)때의 기와 쪽편이 발굴되었으니 기와굴이 있었다하여 와항(瓦項)이라 하였다.
실전의 큰 실갯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거신이 집골 다음에 있는 골짜기다.
사환재 밑 오른쪽에 옛날 거신이라는 사람이 살았다는 논들이 있는 골짜기다.
실전 동남쪽 깊은 골짜기에 있는 촌락에서 연초면 도청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와항의 용등산(龍登山) 높이 159.9m에 삼각점이 있고 밑에 실전리 공동묘지가 있다.
실전 북서쪽에서 칠천도로 건너가는 나루터가 있는 땅끝이다.
칠천도 나룻배를 새로 건조한 비용을 희사한 송병길(宋丙吉)의 송덕비를 칠천도민이 세웠다.
와항의 남쪽 산등성이에 대나무가 많아 그 땅끝을 말한다.
실전의 절터골 왼쪽에 모과나무가 많은 골짜기다.
사환에서 실전으로 바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사환마을 앞 연못이 있는 논들이다.
사환재 넘어골의 아래에 복숭아 나무가 있었다는 골짜기다.
왜곶이 서쪽에 손날등이 있고 바닷가를 손날끝이라 한다.
실전 동쪽의 산밑에 있는 골짜기다.
실전 동남쪽에 있는 등성이로 빈소의 상막처럼 생겼다.
실전 남쪽위의 저수지 밑에 있는 도수로이다.
실전 북서쪽에 참새가 많은 외딴 마을이다.
실전 서쪽에서 사환으로 돌아가는 고갯길이다.
사환 서북쪽에 소나무가 울창한 등성이다.
사환 아랫마을 숲에 김해김씨(金海金氏) 김명석(金明석)과 아들 김옥춘(金玉春) 손자 김유성(金有聲)을 모시는 현충사(顯忠祠)와 송년제(松年劑)가 있다.
거제도와 진해시를 1일 7회 왕복하는 카페리호 2척의 선착장이다.
사환들 아래에 있는 하청항의 갯벌이다.
실전 북쪽 장목면 매동과 경계인 등성이다.
실전 큰 마을 밑 고랑건너 양지에 있는 마을이다.
사환 바다쪽에 어한둠벙이 있는 논들이다.
사환 아랫몰 어귀에 옥씨(玉氏) 집안 김씨부인(金氏婦人)의 열녀비가 있다.
실전의 안골 동쪽에 용둠벙이 있고 그 위쪽에 용둠벙 폭포가 있다.
사환 북동쪽에 작은 연못이 있어 용이 등천하였다 하며 일명 화불암산이라 한다.
어장막 위 등성이로 하청에 맹종죽(孟宗竹)을 일본에서 도입한 신용우(辛容禹)의 대밭이라 용우산이라 하였다.
실전 서쪽 음지에 있는 촌락마을이다.
실전 동북쪽 개안 위의 골짜기다.
모과나무골 남쪽 골짜기에 절이 있었다.
실전의 칠천도 나루터위 등성이에 종합병원이 있었다가 고현의 기독병원으로 옮겼다.
사환마을 갯가 등성이에 주만이란 사람이 살던 터이다.
실전 용두밭골 위쪽 산마루에 기다란 바위가 있다.
실전 동쪽 진바위 윗쪽에 칼 모양의 바위가 있다.
사환 동쪽에 돌탑이 있었던 골짜기다.
실전 용등산 옆 망등산성이 있었고 봉수대가 있었으며 계룡산, 남여산, 옥녀봉과 진해의 천자봉으로 전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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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