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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목면사무소(長木面事務所)가 있는 동쪽마을이다.
장목항(長木港)의 안쪽 장목진영사(長木鎭營舍)가 있는 서쪽마을이다.
장목항(長木港)의 부두가 있는 북쪽마을이다.
장목면(長木面)의 중서부 하청면(河淸面)과 경계이고, 칠천도(七川島)를 마주한 갯마을로 본래 씰개라 하였는데 이는 삵쾡이가 서식하였다고 또한 매화(梅花)나무가 있었으니 매동(梅洞)이라 하였다.
장목개의 안에 있는 갯가에 가는개들이 있다.
매동 동쪽에 있는 좁은 골짜기다.
장목의 서쪽에서 북으로 뻗은 땅끝의 서쪽개를 군항포라 하는데 이는 장목진의 전선(戰船)을 계류시켰던 바다로 전성개 또는 전선포라 부른다.
장동 성터에 농모양의 바위가 있다.
장서에 옛날 면사무소가 있던 곳이 장목진의 동헌터였다.
장동 시리싱골 남쪽 끝에 있는 터이다.
남쪽에 있는 골짜기 논이다.
매동 앞에 매화의 형국인 산이있다.
장동 북쪽 시리성골의 제석산 서쪽의 골짜기다.
가는개 남서쪽에 호랑이모양의 바위가 있는 골짜기다.
군항포 북쪽에 대범북도 면적 9,521㎡와 소범북도 면적 3,868㎡의 두 개섬이 있다.
밤밧골에 벼락을 맞은 바위가 있다.
장동 남쪽에 봉지라는 사람이 살았던 논골이 있다.
매동 동쪽 가는골 동쪽에 풍구모양의 개가 있다.
장동 북쪽 시리성골 제석산 바위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장서의 큰골 북동쪽에 산신제를 지내던 골짜기다.
장동 북쪽 시루성터가 있는 골짜기 위에 높이 32.7m에 지적측량의 삼각점이 있다.
제석골 흉년때 쑥떡과 바꾸었다는 논이다.
장북의 골짜기에 둘레 2,400m의 왜성이 있는데 임진왜란때 왜군이 쌓았다.
왜성과 시루성의 사이에 성터가 또 있다.
장동의 동헌터 뒤에 장목진의 감옥이 있었는데 지금은 밭이다.
매동 북쪽에 기와를 구웠다는 산이 있으며, 높이 120.4m에 삼각점이 있다.
장동 큰 농바위 동쪽에 작은 바위가 있다.
세조(世祖) 5年(1460) 8개군에 진관(鎭管)을 설치하게 되어 성종(成宗) 원년(元年:1470) 거제칠진(巨濟七鎭)의 하나로 장목포진(長木浦鎭)을 설치하였으나 진성(鎭城)은 없고 효종(孝宗) 7年(1656) 병신(丙申)에 통제사 유혁연(統制使 柳赫然)이 별장 무종구품(別將 武從九品)을 두고 전선(戰船), 병선(兵船), 사후선(査侯船)을 배치하였는데 고종(高宗) 32年(1895) 갑오경장(甲午更張)에 따라 통제영(統制營), 수영(水營), 진영(鎭營), 진보(鎭堡) 등 모두 철폐하였다.
성종(成宗) 원년(元年:1470) 장목진(長木鎭)을 두고 옛 장목면사무소(長木面事務所)였던 객사(客舍)가 있었으며 임진왜란때 이순신장군(李舜臣將軍)과 이영남만호(李英男萬戶)가 전투를 숙의하던 영사(營舍)로 1971年 12月 29日 지방유형문화재 제189호(地方有形文化財 第189號)로 지정되어 국고보조로 복원하였다.
장동 농바위 서남쪽에 사람이 누운자국과 손자국이 있는 바위로 힘센장사가 쉬어갔다는 전설이 있다.
매동 동쪽 불목개 동쪽에 산신제를 지내던 골짜기다.
장서 남쪽 제석골 위에 산제바위가 있는 산이다.
매동 동쪽 제뚝골에 흉년때 죽을 얻어먹고 주었다는 논이다.
매동 동쪽 불목개에 흉년때 찰떡과 바꾸었다는 논이다.
장서에서 연초면 도청골로 넘어가는 큰 고개다.
장동 농바위 맞은 편에 큰 농모양의 바위가 있다.
동헌터 동쪽에 나무로 통처럼 만든 우물이 가뭄을 타지 않았다.
담당부서
최종수정일 : 2020-11-16